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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말릴 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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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마누엘한인연합감리교회 댓글 0건 조회 156회 작성일 20-10-11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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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국의 국정감사 자리가 외교부 수장의 한 마디 말로 인해 웃음바다가 되었다고 하네요. 코로나19로 인해 해외여행 자제를 국민들에게 요구하던 시점에 강경화 장관의 남편이 미국으로 비싼 요트를 사러 갔다고 말들이 많았습니다. 초기에는 강 장관과 남편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다가 시간이 좀 지나며 외국의 고급세단에 비해서도 가격이 높지 않고 장관의 공적일과 구분된 남편의 개인 사생활이란 반론으로 인해 여론이 잠잠해 진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국정감사가 시작될 때 야당이 문제 삼기에 좋은 소재가 분명했던지, 강 장관은 먼저 사죄의 뜻을 전하며 국감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한 야당 의원의 질의였습니다. “남편이 오래전부터 해외여행을 계획했는데 말렸어야 한 게 아니냐?”고 따지자 강 장관은 “개인사이기 때문에 말씀 드리기 뭐하다”면서도 “남편은 내가 말린다고 말려질 사람이 아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순간 국감장 곳곳에서 웃음이 터졌고 심지어 질문을 던진 야당 의원도 어이가 없었는지 순간적으로 웃음을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예상을 벗어난 솔직한 답변에 나온 반응이었던 것이죠. 이날 강 장관의 대답 이후 남편의 문제가 정치적 쟁점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이 문제를 잔뜩 벼르고 온 사람들에게 강경화 장관의 솔직한 태도와 답변이 ‘우리 부부, 우리 가정의 문제일수도 있다’는 공감을 불러일으킨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굳이 가만히 있어도 되는데 여러 가지 노림수로 설화(舌禍)를 불러일으키는 미국 지도자들의 도 넘은 말장난에 비해 훨씬 참신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성경에도 이 말의 중요성을 전하는 내용이 많습니다. 특별히 세속적 삶의 지혜를 노래하는 잠언을 보면 상당히 많은 내용이 이 말, 언어와 관련된 구절들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표적인 구절들은 이렇습니다.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정직한 증거를 보이지만, 거짓 증인은 속임수만 쓴다. 함부로 말하는 사람의 말은 비수 같아도, 지혜로운 사람의 말은 아픈 곳을 낫게 하는 약이다. 진실한 말은 영원히 남지만, 거짓말은 한순간만 통할 뿐이다." (잠언 12:17~19. 새번역)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열매가 사람의 배를 채워 주고, 그 입술에서 나오는 말의 결과로 만족하게 된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으니, 혀를 잘 쓰는 사람은 그 열매를 먹는다." (잠언 18:20~21. 새번역)


저 같은 경우 나이가 먹어갈수록 말 수가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집에서 아내와 아이들이 “교회에서 말 하듯이 집에서도 말 좀 하라”고 성화지만, 요사이 교회에서도 말 수가 줄어들고 있는 편입니다. 팬데믹이라 대면하는 사람과 만나 할 수 있는 대화의 양 자체가 줄어들기도 했지만, 가끔씩 드는 생각은 ‘내가 하는 말은 설교로도 충분하다’고 생각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 말씀의 무게도 감당키 힘든데 내 말을 더 늘리고 싶지 않게 됩니다. 성경공부하며 말 많이 하는 것을 제외하곤 개인들과의 대화에선 주로 듣는 귀가 커져 가는 것 같습니다.


더군다나 영어를 모국어로 삼은 미국에 살다보니 나의 말은 한국 사람들에게로 한정되고, 6년 살아도 영어의 혀는 풀리지 않고 더욱 애매해져 갑니다. 한편에선 모국어의 아름다움과 정서에 목말라 하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제가 좋아하는 작가 박완서 씨가 1988년 사고로 아들을 잃어버리고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러 미국의 딸 네 집에 와 지내다가 모국어가 목말라 돌아갔다는 자서전적 고백도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그리고 또 한편에선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가 더 유창해지면 나의 세계가 확장되겠다는 동경이 가득해 집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했던 하이데거의 철학적 주장과 언어학자들의 이론에 기대어 보면, “생각이 언어를 규정하지 않고 오히려 언어가 우리의 사유를 더 풍부하게 해 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다른 언어를 구사할 줄 안다는 것이 내 사유의 세계를 더 풍요롭게 확장시켜 줄 것이 분명할 것입니다.


말과 말이 충돌하는 미국의 선거철이 다가옵니다. 그것도 70세를 훌쩍 넘어버린 두 후보가 논리를 잃어버린 격론으로 충돌하고 있습니다. 말에도 격조가 있고 사상이 있다면 천박한 말은 천박한 사유에서 비롯된 것이 분명할 것입니다. 이 가을에는 말 좀 줄이면 좋겠습니다. “왜 사냐건 웃지요”라고 답했던 김상용 시인의 싯구처럼 거친 말에도 웃음으로 대답하고 깊이 있는 성찰로 마을을 채워가는 우리네 말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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