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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게 나이를 먹어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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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마누엘한인연합감리교회 댓글 0건 조회 93회 작성일 21-07-18 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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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제가 온라인상에 분노의 글을 계속해 올리고 있습니다. 애틀랜타의 한 한인교회에 대한 연회의 처리방식을 보면서 분노할 수밖에 없고, 이에 편승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지역 목회자 단톡방에 논쟁의 쟁점에 있는 분을 향해 한 마디 썼습니다. “곱게 늙었으면 좋겠다”고요. 당사자는 제 신학교 선생님이셨고, 한인교회 문제해결을 위해 연회로부터 임시담임으로 파송 받은 분이셨습니다. 물론 교회 구성원들은 반대하고 있는데, 연회와 당사자가 임시 담임목사직을 강행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한국의 촛불혁명에서 나타났듯이 한국 사람들의 DNA에는 정당하지 못한 권위를 의심하고 저항하는 의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국사회가 급격한 개혁과 변화를 수용할 수 힘이 되기도 했습니다. 누가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을 사회 심리적으로 분석하며 이렇게 비교하더라고요. 일본 사람들은 리더를 선정하면 그 권위에 순종하는 엘리트 중심의 사회라고요. 그래서 사회가 치밀하고 정교한 반면, 변화와 개혁의 가능성은 적다고 합니다. 반면에 한국은 엘리트를 리더로 세우면 모두가 다 자신이 리더를 자처하고 기존의 권위를 인정하는데 인색합니다. 이 때문에 정교함은 일본보다 떨어지지만, 변화와 개혁의 가능성은 어떤 나라보다 많다고 합니다.


제가 그 저항과 혁명의 DNA를 품고 살아온 것 같습니다. 목회자 단톡방에서 말이 과하다는 지적이 있어 사과했습니다. 분노가 나를 잡아먹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습니다. 분노하지 않고 공감의 언어를 사용하며 변화와 개혁을 이루어 가야겠습니다. 여러분의 젊은(?) 목사가 아직도 부족하고 혈기가 넘쳐 일어난 일입니다. 몸은 중년이 되었는데, 청년의 혈기를 품은 마음을 들여다 본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에겐 목회현장이 이민자의 현장입니다. 여러분들이 미국 사회에서 경험해 오셨던 차별과 박탈감을 저는 요새 UMC 연회와의 관계에서 경험하고 있습니다. 조지아는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이 시작한 흑인운동의 현장이어서 그런지 흑인교회의 파워가 강합니다. 그들의 단결력과 정치력도 상당합니다. 그들이 지닌 연대의 힘은 교단의 정치적 지형 가운데도 나타납니다. 그래서 연합감리교회의 지도자들이 흑인교회에 대해선 세심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에 비하면 한인교회를 포함한 아시아인들에 대해선 일방적인 지도력을 행사합니다. 심지어 지난 애틀랜타 스파 총격 사건 이후 LA와 시카고, 뉴욕의 교회들이 성명을 발표하고 아시안을 보호하기 위해 앞장섰을 때조차, 북조지아연회는 해당 지역의 연회였음에도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알았습니다. ‘이곳이 남부이구나... 나도 차별받고 있구나...’


그런 남부의 연합감리교회인데, 지도자들은 또 동성애 문제에는 예민한 감수성을 지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소수자를 사랑하는 분들이 이에 대해 반대하고 다른 생각을 품은 이들을 용납하지 않고 정죄합니다. 여러분들이 느끼듯이 저는 진보적이고 개방적인 정체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방적인 권위에는 쉽게 순응하지 못합니다. 진보적이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지닌 독선을 용납하기 힘듭니다. 또 페미니스트를 자청하는 사람들이 자행하는 인종차별의 모습을 받아들이기가 너무나 혼란합니다. 이 또한 사람 사는 세상이겠지요? 그 가운데 내 마음을 잘 다스리고 성찰해야겠다고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지난 화요일 연합감리교회의 목사님들이 온라인상에서 모이는 ‘목회공부방’에서 ‘목회자의 영성’을 주제로 뉴잉글랜드연회의 감리사님이신 장위현 목사님이 강의를 해 주셨습니다. 제가 목사님의 말씀 가운데 주목한 것은 ‘나의 습관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었죠. 습관을 변화시키기 위해 성 베네딕트의 3가지 강조점을 나눠주셨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기도’ △자기와의 관계를 개선하는 ‘독서’ △세상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노동’. 한 주를 정리하고 주일을 준비하며 마음을 다스려봅니다. 들뜬 마음과 분노를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집중하며 기도합니다. 연약한 마음이 게을러지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해 합니다. 그리고 손과 발을 움직이는 노동을 통해 내가 세상과 연결되어 있는 존재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자기 욕망에 취해있는 추한 어른이 아니라, 사는 것이 볼 만한 곱게 늙어가는 목사가 되어가겠지요?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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