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 지면 오늘은 내일이 아니라 어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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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마누엘한인연합감리교회 댓글 0건 조회 2,041회 작성일 23-08-15 07:16본문
노을이 지면 오늘은 내일이 아니라 어제가 됩니다
- 박송수목사 -
사람이 죽음 앞에 서게 되면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인생의 에필로그인 유언을 남깁니다.
뉴턴(lsaac Newton 1642~1727)은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기 전, 자신의 과학적 업적을 칭송하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깁니다.
“세상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건 중요하지 않다. 나는 단지 하나님의 거대한 진리의 바닷가에서 놀고 있는 소년일 뿐이다. 그 거대한 바다는 아무것도 나에게 가르쳐 주지 않으며 단지 내 앞에 펼쳐져 있을 뿐이다. 나는 그 바닷가에서 놀다가 가끔씩 작은 돌과 예쁜 조개를 발견하며 즐거워했을 뿐이다”
뉴턴은 천재 과학자로서 역사의 한 획을 그었지만 스스로를 가르켜 하나님 앞에서 뛰어노는 어린아이로 표현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이론과 법칙들은 그저 작은 조개껍데기에 비유하며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님을 우회적으로 경고합니다. 그가 이러한 유언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사실 그가 평생을 거쳐 과학서적보다 신약성경을 더 많이 읽고 묵상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때 쉽게 이해됩니다.
성경에서도 신앙인들의 유언이 나오는데 그 유언에는 그들이 일평생 고민하고 붙잡았던 신앙의 알멩이가 담겨져 있습니다. 예컨대 그들이 깨달은 신앙의 중심은 도서관에서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신앙서적 몇권 읽고 설교 몇 편 들으며 정립된 것이 아니라 삶의 굽이굽이 눈물과 땀으로 얼룩졌던, 그래서 그것 때문에 하나님과 씨름했던 삶 전체를 통해 얻어진 것입니다.
그 중에 야곱의 유언은 현재의 삶의 내용과 과정을 무시하고 오로지 미래의 결과만을 중요시하는 기복 신앙적 태도를 가진 이들에게 경종을 울립니다. 야곱은 복을 얻기 위해 형과 아버지를 속이고, 삼촌 라반의 집에서도 복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합니다. 심지어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오던 밤,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할 때도 복을 갈망합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않으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33:26b) 이처럼 누구보다도 복에 대해 집착하고 복에 대해 갈망했던 사람이 야곱이었습니다.
하지만 죽음을 앞두고 자녀들에게 남긴 그의 유언을 보면, 지금까지 기복적인 자세로 살아왔던 그의 관점이 바뀌었음을 보게 됩니다. 창49:28에 보니까 야곱은 자신의 12아들에게 다음과 같이 축복합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열두지파라, 이와 같이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말하고 그들에게 축복하였으니 곧 그들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더라”. “각 사람의 분량대로 축복하였다”는 말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자식들의 삶의 내용을 꼼꼼히 결산하여 축복했다는 의미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왔던 자녀들의 삶을 종합하여 결론지었을 때, 장차 그들의 인생에 이런 열매가 맺히게 될 거라는 예언이자, 선포입니다.
야곱의 축복에 담긴 영적통찰은, 복(福)이라는 것은 지금까지의 살아온 내 삶과 신앙의 내용에 비례한다는 것입니다. 어느날 내 인생에 갑자기 찾아오는 행운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49:1에 보면, 야곱이 자식들을 축복할 때 뭐라고 전제하냐면? “야곱이 그 아들들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모이라 너희가 후일에 당할 일을 너희에게 이르리라”고 합니다. ‘복’은 지금 내가 살아온 삶에 비례하여 ‘후일에 당할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12아들을 향한 야곱의 축복에는 듣기 좋은 예언의 말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저주와 책망도 있는 것입니다.
죽음을 앞둔 아버지는 자식의 삶이 망가지는 걸 그냥 지켜보지 않습니다. 그 인생이 장차 어떻게 될지 뻔히 아는데 가만히 지켜볼 수 없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자식들이 섭섭하게 들을 수 있겠지만, 과오를 정확히 지적해 줌으로써 그들의 삶의 결과로 나타나게 될 열매가 아름답게 맺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의 축복은 우리로 하여금 인생의 모든 시간에 대하여 최선을 다하도록 경고합니다. 그리고 ‘오늘’과 ‘지금’이라는 시간에 더욱 집중하고 소중히 여기도록 이끌어 줍니다.
까뮈(Albert Camus 1913~1960)는 ‘최후의 심판을 기다리지 마라 그것은 매일 행해진다’고 했습니다. 최후심판에 대한 그의 명제를 통해 생각해본다면, 기독교인은 ‘종말론’을 신봉하는 자가 아니라 ‘종말론적 삶’을 살아가는 자입니다. ‘오늘’이 예수님께서 심판의 주로 오시는 ‘내 삶의 마지막 날’이라는 영적긴장을 가지고 사는 자입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그날과 그때를 누구에게도 알려주시지 않은 것’(마24:36)이 바로 이러한 의도였는지도 모릅니다.
소중한 오늘을 의미없는 어제로 흘려보내지 않는 지혜롭고 현명한 ‘영원의 순례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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