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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眞理), 일리(一理), 무리(無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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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마누엘한인연합감리교회 댓글 0건 조회 118회 작성일 19-01-13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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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톤의 경구 ‘절대 권력은 절대로 타락한다’는 표현은 다음과 같이 대응하는 문구를 낳는다. ‘절대 지식은 절대로 타락한다.’" (Marsh)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우리네 속담은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경험적 진리입니다. 많이 알고 경험한 사람일수록 겸손하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유독 종교적 세계에서의 진리에 대한 확신은 반대자를 처형하거나 집어 삼키는 극단적·교리적 논쟁을 불러일으킬 때가 많습니다. 이것은 비단 종교 대 종교의 충돌에서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역사 안에서도 다양한 실례로 나타납니다. 개신교 내의 극단적 교리주의자들은 아직까지 가톨릭을 이단으로 보고 있으며, 반대로 일부 가톨릭교도들은 종교개혁을 수녀와 바람난 루터라는 사제의 일탈행위처럼 폄하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근래 연합감리교회 안에 일어나고 있는 동성애를 바라보는 입장의 차이도 오는 2월 총회를 앞두고 좀 더 극단적이고 투쟁적인 양상으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현재 2월 총회의 안건으로 상정된 동성애에 대한 대응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입장으로 정리되고 있습니다. △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보수 · 진보 · 중도파를 하나로 묶으려는 ‘하나의 교회 플랜’ △ 현 장정의 법안을 강화하면서 그것을 지키지 않는 교회, 연회, 감독, 목사와 평신도들에게 은혜로운 탈퇴를 권면하는 ‘전통주의 플랜’ △ 동성애에 대한 입장차를 인정하면서 미국 내의 5개 지역총회를 3개의 신학적 지역총회로 헤쳐 모이게 하는 ‘연대적 총회 플랜’


절차와 과정을 중시하고, 약자를 보호해 온 전통을 지닌 감리교회의 노력에 찬사를 보냅니다. 하지만 총회가 다가오면서 과열되는 논쟁과 정쟁을 바라보는 불편함도 존재합니다. 우선, 저를 포함한 많은 한인교회의 구성원들은 이 문제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빠듯하고 치열한 이민사회에 어떻게 자식을 키우고 살아남을 수 있는지에 대한 생존의 관심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최근 미국사회 안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동성애와 젠더의 담론에 참여하지 못하면 지식인으로 인정받지 못하거나, 아니면 지적으로 저열한 것처럼 여겨지는 폭력적 태도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이민자들의 문화적 · 경제적 · 계급적 상황에 대한 몰이해로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둘째로, 논쟁에 참여하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는 한인교회가 세 가지 플랜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도 매우 강제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만큼 한인교회가 주류사회의 이슈로부터 떨어져 있는 것인지, 문화적 격차가 큰 것인지, 지도자들이 정신 차리지 못해 이슈에 대응할 시기를 놓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제 한인교회는 총회의 결정에 따라 매우 큰 딜레마와 선교적 도전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현 상황에서 우리가 선택할 것은 진리에 대한 겸손한 접근입니다. ‘겸손하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진리는 절대적이지만, 이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우리의 인식이 제한적임’을 인정할 때, 서로의 다른 점을 수용할 여지가 생긴다는 뜻입니다. 진리는 말씀을 통해 계시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따라서 진리는 우리의 소유물이 아닌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진리의 담지자’를 자처할 때, 나와 다른 주장을 펼치는 사람을 ‘입장이 다른 사람’이 아닌 ‘잘못된 사람’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眞理)’를 받아들이고 따르는 우리의 입장은 ‘일리(一理)’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진리에 대한 겸손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서로 다른 일리가 모여 조화를 이룰 때, 일리가 진리에 가까운 믿음과 이론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진리를 따르는 나의 일리가 제자도를 통해 내 삶에 체득될 때, 일리는 진리에 가까운 확신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배타적 진리만을 주장하며 상대방을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는 진리가 없는 ‘무리(無理)’에 불과합니다. 반면에 내가 일리가 되어 다른 신앙과 관점을 받아들이는 관대함과 지적 성실성은 우리를 진리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당면한 총회의 결정을 앞두고 개인적으로 바라는 대안은(매우 순진한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한인교회를 세 가지 입장의 틀에 줄 세우지 않고,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않고 총회가 끝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결정이 내려진다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확신과 그 진리를 따르는 우리의 일리에 대한 겸손함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진리의 길을 따르는 이들을 향해 교회의 역사가 남긴 경구가 있습니다(혹자는 웨슬리가 남긴 말이라고도 하지만 확인된 바는 없습니다). 


“본질에는 일치를, 비본질에는 자유를, 그 모든 일에 사랑으로...” 

우리를 자유하게 하는 진리를 따르기 위해 '일리의 해석학'*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입니다. 


- 이준협 목사


* 이 '일리의 해석학'이란 표현은 감신대 재학 시절 선생님이었던 철학자 김영민으로부터 배웠습니다. 본 목회수상과 제목이 동일한 다음 책을 참고해 보십시오. 김영민 저, "진리, 일리, 무리 - 인식에서 성숙으로 -"(철학과 현실사,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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