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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러지에 대한 짧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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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마누엘한인연합감리교회 댓글 0건 조회 295회 작성일 19-03-31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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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알러지를 앓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코가 막히며 콧물을 달고 살고, 자고 나면 막힌 코로 인해 입으로 숨을 쉬다 보니 목이 건조해지고 붓습니다. 미국에서 5년간 지나면서 이렇게 심한 적이 없었는데, 분주함 가운데 지내다 보니 면역력이 전보다 떨어져서 일어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주위에 계신 분들 이야기로는 “지난겨울이 따뜻해 금년 봄에는 꽃이 일찍 피니 꽃가루가 벌써부터 날리며 알러지가 시작된 것 같다”고들 말씀하십니다. 돌아보니 조지아의 좋은 공기를 마시고, 푸른 산천 가운데 살아가는 대가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몇 년 전부터 매우 심해진 한국의 미세먼지를 생각해 보면, 봄철 잠깐 지나가는 알러지는 그래도 견딜만 합니다. 


통계에 따르면 미국인 5명 중 1명꼴로, 무려 20%에 가까운 사람들이 봄철 알러지로 고생한다고 합니다. 하루 종일 코가 막혀 숨이 차고, 눈이 가려의 벌겋게 충혈 되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 몸살 앓듯이 알러지를 알아왔던 사람이라면, 아무리 예쁜 꽃이 피는 계절이라 해도 ‘봄’이 오는 소리에 걱정부터 앞설 것 같습니다. 


의학계에선 알러지의 정도를 3단계로 구분합니다. △가벼운 단계 : 이른 봄에서 초여름까지 야외에 나가면 코가 간질간질 하고 눈에 눈물이 차오르는 단계로 일상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다. △보통 단계 : 실내에서도 재채기가 나오고 콧물이 흘러내린다. 코가 막혀 밤에 잠을 설치거나 아침에 일어나면 목이 따끔따끔하며 생활에 지장을 느낀다. △중증 단계 : 항상 코가 꽉 막혀있고 콧물이 24시간 흘러 휴지를 달고 산다. 수시로 채치기가 나고 눈이 가렵고 충혈 되어 있다. 목도 아프고 알러지 기간 몸살처럼 드러누울 정도로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느낀다. 각 단계별 관리 방법도 다르지만, 중증 알러지의 경우에는 알려진 대로 장기간의 ‘면역 치료’를 통해 완치가 가능하다고 의료계에선 소개합니다.


알러지 때문에 앓는 소리를 하니 집사람이 한 마디 합니다. “그 동안 매년 봄마다 마누라가 알러지 때문에 고생하면 약 먹으라는 말만 하고 관심도 갖지 않더니, 이젠 자기 몸이 아프니 죽는 시늉한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니 욕을 먹어도 싼 것 같습니다. 아내가 매년 봄마다 몸살 앓듯이 아프고 눈이 가려워 고생해 왔는데, 내가 알러지 때문에 고생한 경험이 없으니 아내의 어려움에 공감해 주지 못 해 온 것이죠. 


그렇게 보면 여자가, 아니 아내가 남편보다 강한 것 같습니다. 물론 육체적 근력은 남자들이 더 강하겠지만, 정신력과 끈기가 아내들이 더 강한 것 같습니다. 본인 몸으로 아이를 갖고 출산하고 키운 경험이, 자기 몸 조금만 아파도 죽는 시늉하는 남편을 아이들과 함께 키우며(?) 살아왔던 경험이, 아내들을 강하고 끈기 있게 만들어 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내는 남편보다 남의 아픔에 대해 공감해 주는 마음도 더 큰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남자보다 여자를 나중에 창조하신 이유는 여자가 남자보다 완성체에 가깝기 때문이 아닐까요? 창조의 제일 끝에 인간을 지으시고, 인간의 끝에 여자를 만드셨으니까요.


내 몸이 아파야지 아파하는 사람이 이해됩니다. 내 마음이 아파야지 상처 받은 사람들의 마음이 이해됩니다. 그래서 세상은 공평한 것이죠. 결국 우리는 시간의 흐름 가운데 아프게 살아가며 누군가를 이해하게 되니 말이죠. 하나님께선 우리가 혼자 살 수 없기에 가족을 주셨고, 홀로 설 수 없기에 신앙의 공동체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프기 전에 이해하려는 마음의 태도를 먼저 갖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자비’의 마음이라고 하지요. 그리고 그 자비의 근본은 ‘누군가를 공감해 주려는 사랑의 마음’인 것입니다.


내가 아파야지 남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는 지극히 개인적인 존재입니다. 하지만 나와 같은 사람도 주님께 받아들여졌던 수용의 경험이 남을 수용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자비의 마음으로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이 아닐까요? 때론 너무나 분주하고 치열한 이민사회의 삶 가운데서도, 그래도 교회 안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수용하려는 공감의 마음, 자비의 마음이 우리에게 더 필요할 때입니다. 알러지를 잠시 묵상하며 누군가의 아픔과 자비의 필요성을 떠올리게 되니, 가끔씩 아픈 경험과 살아가며 때론 얻게 되는 마음의 상처도 ‘자비’의 마음을 갖기 위한 ‘성장통’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준협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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