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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manuel Korean United Methodist Church

“독립하는 자녀들을 축복해 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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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마누엘한인연합감리교회 댓글 0건 조회 65회 작성일 19-09-03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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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대학시절 매 년 여름방학에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습니다. 물론 여름성경학교, 중고등부 수련회 등의 교회행사를 먼저 마치고 나서 했는데, 거의 대부분의 아르바이트 종류는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이른바 ‘노가다’였습니다. 당시 대학생에게 허락된 아르바이트 현장 중 일당이 가장 센 편이기도 했고, 어머님의 교회 친구 분이 조그만 건설회사를 운영하고 계셔서 어머님 입김(?)으로 일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죠. 2학년 여름방학 때 어머니 손에 이끌려 서울 화곡동의 한 빌라 건설현장에 아무 생각 없이 처음 나간 날, 노가다 근육이 형성되어 있지 않던 저는 하루 종일 속으로 욕을 곰삭이며 일 했습니다. 노동 현장에 나를 내 던지고(?) 가신 어머님에 대한 원망, 고된 현장에 대한 푸념이 섞인 한숨을 쉬면서 말이죠. 현장의 아저씨들은 “어머님이 자기 아들을 데리고 노가다 현장에 찾아온 것은 처음 봤다”고 신기하게 생각하면서 웃으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원래 막내아들로서 큰 아들인 형님보다도 오히려 더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데 자유로웠던 저였기에, 후에 신학교 학생회장을 하면서 경찰서를 들락날락 하던 험한 시절을 맞이하기도 했지만, 스스로 돈을 벌고 계획해 쓰면서 독립적으로 생활하는데 익숙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독립심이 대학 시절 거의 용돈을 받지 않고 생활하는데, 그리고 어려운 미자립교회에서 처음 목회를 시작하면서도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고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지난주부터 12학년인 저의 첫째 딸이 주중에 카페로 아르바이트를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대학입시를 위해 SAT 점수를 최종 확인하고, 내신 성적(GPA) 관리도 잘 하는 것을 우선순위로 하기로 했지만, 부모 입장에선 ‘대학 입학이 최종 승인되고 시작하면 좋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어필(?)한 결과 딸의 아르바이트는 ‘일 주일 천하’로 그치고 말았습니다. 물론 목사 딸이라 억울한 게 많은 첫째는 어떻게든 다시 아르바이트를 시작해 돈을 벌 기세입니다. 며칠 동안 아내와 함께 첫째 딸과 이야기를 나누며 ‘딸의 용기 있는 독립심’에 대해선 찬사를 표현하고, ‘중장기적 계획과 우선순위를 제대로 세우지 못하는 미숙함’에 대해선 한숨을 쉬는 복잡함 심정을 숨길 수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막연하지만, 사랑하는 딸이 부모의 품을 떠날 때가 가까워지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최근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저희교회에서도 세 가정의 자녀, 그것도 세 명의 딸들이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모두 좋은 대학에 입학해서 감사했고, 목사로서 하나님께서 그 자녀들의 앞길을 인도해 주시길 기도하며 축복하는 마음 가득합니다. 그런데 제가 주관적으로 느끼기에, 모두 타주로 입학해 집을 떠나는 딸들의 현실에 대해 엄마들은 매우 기뻐하고 있는 것 같고, 아빠들은 매우 슬퍼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치 한국에서 군대 보내는 아들을 아빠들이 담담히 바라보는 것과 다르게 엄마들이 눈물 흘리며 보내는 것처럼, 이곳 미국에선 반대로 딸과 지지고 볶고 살아오던 엄마들은 겉으로 담담하지만 속으로 매우 시원한 마음으로 딸들을 배웅하고, 바쁘게 살며 딸들과 어느 정도 분리되어 있던 아빠들은 걱정이 앞서는 미안한 마음으로 딸들을 대학과 기숙사로 보내는 것 같습니다.


지난주에 첫째 딸 예지를 시카고의 미대에 입학시키고 돌아온 서성수 전도사님께 심정을 물어보니 이렇게 답합니다. “목사님도 내년에 경험해 볼 것이니 미리 알려 드릴게요. 예지를 기숙사로 들여보내고 돌아오는데, 내 가슴의 한 쪽이 뜯겨 나가는 것처럼 아프고 슬펐어요.” 일과 육아를 함께 담당하며 딸들을 키워온 엄마들이 후회가 없는 것과 다르게, 그냥 일 때문에 바쁘게만 살아온 아빠들은 미안한 것이 더 많아서 그런 것일까요? 여하간 저도 내년엔 첫째를 시집보내는 마음으로 대학에 보내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한국과 다르게 멀리 떨어질 가능성이 더 많고, 또 대학에 입학하면 부모와 더 강하게 분리되는 미국사회의 현실 가운데 우리 자녀들이 그렇게 독립하게 되겠지요? 품에서 벗어나는 것이 문화적으로 생물학적으로도 자연스러운 것처럼, 그 아이들이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성숙해 지는 과정도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다만 덜 아프게, 덜 상처받고 씩씩하게 자라길 바랄 뿐이죠. 나도 모르게 훌쩍 커 버린 딸의 모습을 생각하니, 그리고 언젠가 독립하게 될 아이들의 미래를 막연하고 불안하게 생각하는 제 마음을 들여다보니, 자녀들이 독립을 준비하듯이 저도 그들의 독립을 준비해야 하는 부족한 부모임을 다시 한 번 알게 됩니다. 그렇게 홀로 살아가며 인생의 독립을 준비하는 모든 자녀와 부모님들을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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