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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환의 가치에서 희생의 가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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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임마누엘한인연합감리교회 댓글 0건 조회 28회 작성일 19-12-23 0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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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하면서 년 말마다 참으로 감사하면서도 송구스런 점이 선물을 받을 때입니다. 서울의 큰 교회에서 청년부 목회 할 때는 잘 챙기는 자매들로부터 얼마나 많은 선물을 받았는지 어쩔 때는 마치 ‘아이돌’이 된 기분(?)도 들었습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명절이나 성탄절에 카드나 선물을 받으면 ‘아, 나는 준비하지 못했는데 어쩌나...’ 하는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목회자라서 성도들이 관심 갖고 선물도 주시고 사랑과 관심을 표현하는데, 그럴 때마다 빚진 자의 심정이 더해집니다.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그래 목회 더 열심히 해야겠다. 이 사랑의 성도들을 위해 기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으로 갚고자 합니다. 


선물을 받으면 주고 싶다는 마음이 자연스러운 것인데, 때론 이런 인지상정의 마음을 떠나 선물을 주고받는 것이 과하게 보일 때도 있습니다. 년 말이 되면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회사들이 내 놓는 갖가지 기획 상품들이 쏟아져 나오죠? 이 때 세상은 잘 포장된 선물들로 넘쳐납니다. 그것들이 얼마나 예쁘고 쓸모 있어 보이는지... 값은 또 얼마나 비싼지... 보암직도 하고 써봄직도 한 상품들이 성탄의 길거리를 채우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 성탄절은 1년 간 지속되어 온 연인들이나 가족, 지인들을 위해 준비했던 이벤트를 하나 더 마련하는 시기가 됩니다. ▷2월 14일 ‘밸런타인 데이’ - 여자가 평소 좋아했던 남자에게 초콜릿을 선물하며 사랑을 고백하는 날, ▷3월 14일 ‘화이트 데이’ - 남자가 평소 좋아하는 여자에게 사탕을 선물하는 날, ▷4월 14일 ‘블렉 데이’ - 발렌타인 데이나 화이트 데이에 이성으로부터 선물 받지 못한 이들이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날, ▷5월 14일 ‘엘로 데이’ - 블랙 데이까지 애인을 사귀지 못한 사람들이 노란 옷을 입고 카레를 먹어야 독신을 면한다는 날. 이 밖에도 ‘키스 데이’(6/14), ‘실버 데이’(7/14), ‘그린 데이’(8/14) 등 매 월 갖가지 기념일을 통해 상품을 판매하고 외식에 참여하고 영화를 보게 만듭니다. 그리고 년 말에 찾아오는 성탄절은 또 하나의 선물을 준비하는 ‘절기’(?)가 되는 것이죠.


길거리의 음악도 예수의 탄생과는 전혀 상관없는 가사들로 넘쳐납니다. 이 모든 것이 ‘교환가치’가 지배하는 문화입니다. 마음의 가치를 표현하기 위해 선물을 살 때 필요한 ‘화폐’가 마음과 선물을 교환하기 위한 ‘교환가치’라면, 선물을 받은 사람이 또 다른 선물로 갚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지닌 심리적인 ‘교환가치’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1년 중 그 ‘교환가치’가 가장 극명하게 나타나는 때가 바로 예수님이 태어나신 성탄절인 것이죠!


이 ‘성탄절’은 ‘부활절’과 함께 기독교 신앙의 정수를 나타내고 경험하는 가장 큰 절기입니다. 교회력의 절기는 구경하는 사람에게는 ‘교환가치’의 장이 되지만, 참여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가치를 살아내는 신앙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탄절이 나타내는 가장 분명한 가치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희생의 가치’입니다. ‘신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태어나신 성육신’의 사건도 신의 자기희생을 가리키고, 기독교 신앙의 정수인 십자가도 바로 ‘내가 죽어 너를 살리는’ 희생의 가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것을 잃어버린 신앙은 정수를 잃어버린 것이고, 이 정수를 잃어버린 교회는 존재의 이유를 잃어버린 곳이 되어가는 것입니다.


얼마 전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총회장인 전 모 목사가 정치집회를 통해 다음과 같은 망발을 전해 한국교회의 공분을 산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꼼작 마. 하나님 까불면 죽어!” 그 분의 독설은 ‘예수를 위해 죽기를 선택한 자’가 아닌, ‘예수로 먹고 살아야 하는 자’가 필연적으로 ‘예수를 죽여야만 살아갈 수 있는 독(毒)이 든 말’에 불과합니다. 


예수마저 나를 위한 교환의 가치로 삼고 있는 시대입니다. 성탄이 지닌 희생의 가치, 즉 ‘나는 죽고 예수로 살아가는 십자가의 자기 부정’이 더욱 간절하게 느껴지는 때, 2차 세계대전의 종결을 위해 노력하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던 독일의 젊은 신학자 본회퍼의 글을 인용하며 짧은 생각을 갈음하고자 합니다. “예수와의 만남에는 오직 두 가지 가능성만이 존재한다. 인간이 죽든지, 아니면 예수를 죽이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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