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예배와 속회로 성장하는 교회
2019년 교회 표어

설교

Sermon

목회수상
Immanuel Korean United Methodist Church

“연대와 연민의 마음이 필요한 때입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임마누엘한인연합감리교회 댓글 0건 조회 107회 작성일 20-03-09 04:31

본문

지난 2월 23일 한국의 수원에 위치한 한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당일 목사님의 설교제목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이었습니다. 내용은 ① 코로나 19는 교회를 핍박한 중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 그 중에서도 우한 시가 심각하게 교회를 핍박했는데, 최고 책임자가 먼저 감염되어 사망했다. ② 신천지에 대한 심판이다. 신천지 추종자들이 제일 많이 감염된 것은 그들에 대한 심판이며, 동시에 이것은 한국교회를 살리려는 하나님의 뜻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당신의 은혜와 능력 가운데 거하는 자들을 강건하게 하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당일 예배에 참석한 성도 중 한 분이 직장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을 모른 채 예배에 참석해서, 또 다른 성도 5분이 감염된 사실이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감염이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설교한 당일, 교회에서 모두 6명의 감염자가 발생한 것입니다. 그 다음 주인 지난 3월 1일 이 교회 목사님의 설교 제목은 “기도할 때입니다”였습니다. 다행히 중국과 신천지에 대한 심판 보다 “이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기도뿐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실 것이다”라는 회개의 내용이었습니다.


남의 문제일 때는 비난하게 되지만, 내 문제일 때는 성찰하게 됩니다. 특별히 나에게 부정적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문제라면 두려워하게 되죠? 그리고 그 두려움이 우리의 눈을 가려 남을 비난의 대상으로 보게 만들고, 그들에 대한 자비와 연대의 마음을 닫히게 만듭니다. 그래서 남의 문제일 때는 ‘하나님의 심판’이라 경고하다가도, 내 문제가 되고 나서야 나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죠. 


우리 성도들은 대부분 중산층 이상의 백인들이 주류사회를 형성하고 있는 조지아 주의 메리에타 지역에서 살고 계십니다. 성경공부 하다가 성도들의 반응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한 성도 분은 동네의 한 마켓에 남편과 함께 쇼핑하러 갔는데, 남들에게 인사하던 점원이 자신을 보고 아는 척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주위에 있던 백인 부부가 자신들을 보며 손가락질을 하고 수군거리는 것을 경험하며 속상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성도 분은 체육관에 운동하러 갔더니 평소 눈인사 정도 나누던 분이 “너희는 괜찮니?”라고 묻더랍니다. 똑같은 지역에 살고 똑같이 지내고 있는데도, 아시안이란 이유로 유별나게 보는 것 같아서 “괜찮다”고 하니, “너희 교회는 문제 없냐?”고 묻더랍니다. 아마 한국 사람이 많은 곳은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 것 같아, 강하게 “문제없다”고 대답하니, 자신의 질문에 문제점을 느낀 듯 한숨을 쉬며 “아, 더 이상 뉴스를 보지 말아야겠다!”고 이야기 하더랍니다.


같은 상황에 대해 인종적 판단을 받는 것은 매우 불쾌한 경험일 것입니다. 향후 한국 사람들, 아시안이 많이 모여 사는 귀넷 카운티에 코로나 바이러스의 확진자가 발생할 경우, 우리는 아마도 몸을 움츠리고 살아갈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문제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얼마 전 한국 뉴스를 보니 수십 년 간 대구에서 살아온 한 외국인이 약국에서 외국인이란 이유만으로 마스크를 사지 못 했다고 하네요. 또 한국의 대학에서 유학 중인 중국 유학생들이 바이러스의 온상지인 것처럼 자신들을 바라보는 한국인들의 시선에 모멸감을 느끼고 있는 것이 미국에 사는 우리보다 더 부정적인 경험이 아닐까요?


현재 한국의 많은 개신교회에서 예배의 문제가 큰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한 쪽에선 ‘전쟁 중에도 멈추지 않았던 예배를 지금 상황에서 멈출 수 없다’는 순교자의 자세를 갖고 있고, 또 한 쪽에선 ‘공공의 선을 위해, 또 성도들의 안전을 위해 당분간 예배당을 폐쇄하고 인터넷 예배나 가정 예배로 대체하자’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점차 무게 중심이 후자의 결정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교회 운영을 위해 재정적 피해를 감수하기 힘든 고민을 담임목사로서 이해하며, 이것은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는 현실적 문제라고 판단합니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될 점은 ‘이웃과의 관계’입니다. 초대교회의 예배는 식탁 공동체의 자리와 무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세리와 귀족이, 병든 자와 건강한 자가, 가난한 자와 부자가 사회적 금기를 깨고 한 자리에 둘러 앉아 나누는 식탁 공동체는 예배를 통한 하나님의 임재가 성도 간의 교제로 발전하는 공간이었습니다. 이것이 아픔이 만연한 시대에 교회가 잊지 말아야 할 예배의 자리가 아닐까요? 아픔이 있는 사람들과 연대하지 않으면 우리는 두려움에 눈이 가려져 그들을 비난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치유와 구원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못 하게 될 것입니다. 한국에서 코로나 바이러스의 가장 큰 희생자들은 정신병원에 집단으로 수용된 환자, 가난한 노인, 안전한 환경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찾아오시면 가정 먼저 찾아가실 곳이 그렇게 낮고 천한 곳이 아닐까요? 코로나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잊고 있던 이웃에 대한 연대와 연민의 마음입니다.

  • 트위터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